산에 살며 일이 없어 사물의 이치를 고요히 살펴보니, 이익을 좇아 바삐 오가고 노심초사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누에게 나올 때면 뽕잎이 먼저 돋고 제비 새끼가 알에서 나오면 날벌레들이 들판에 가득하다. 아기가 갓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 젖이 나온다.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그 먹을 것도 함께 주는 법이다. 어째서 깊이 근심하고 지나치게 염려하면서 정신없이 바삐 돌아다니며 혹 기회를 놓치지나 않을까 근심한단 말인가?
옷은 몸을 가리면 그만이다. 음식은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 봄에는 보리가 나올 때까지 올메가 있고, 여름에는 벼 옆에서 자라는 피를 먹으면 된다.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내년을 위해 금년에 일을 도모하지만, 내년에 반드시 살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아들을 쓰다듬으며 손자 증손자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만, 자손들은 모두 바보이겠는가?
설사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며 평생 걱정없이 살다가 죽는다 할지라도, 죽고 나서 사람과 뼈가 모두 썩어버리고 후세에 남길 글 하나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삶이 있었다 한들 금수와 다를 게 없을 터이다.
세상에 제일 경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한 일’이리라 하고, 독서를 하고 이치를 탐구하는 일을 ‘옛날 이야기’라고 한다. 맹자는 “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되고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된다”고 했다. 저 사람들은 소인이 되는 걸 달게 여긴다.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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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메:원문은 ‘대맥지미(待麥之米)’인데, ‘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대용으로 먹는 쌀’이라는 뜻으로 ‘올메’와 같은 구황식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올메는 올뫼, 올방개, 오우(烏芋),작미(雀米)등으로도 불린다. 올메는 논이나 습지에서 나며 대추만 한 덩이줄기가 달린다.
<다산의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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