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바닥에 볕이 소복이 든다. 노랗다. 잘 여문 볍씨 같은 햇볕이 애벌레처럼 곰실댄다. 손을 뻗어 볕 속에 밀어넣는다. 손등이 간지럽다. 쿠키를 굽듯 손등고 손바닥을 번갈아 가며 뒤척인다. 온몸이 따뜻해진다. 엉덩이를 들썩해 볕 안에 옴팡 들어간다. 얼굴이며 가슴이며 배가 따뜻하다.
순간 볕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윗옷을 훌렁 벗는다. 윗옷만으로 성이 안 찬다. 바지도 벗는다. 팬티만 걸치고 햇볕 더미에 들어가 돌아앉는다. 개미가 기어오르듯 등판이 자글자글하다. 목덜미며, 엉덩이까지 따갑다.
“다들 이리 와 햇빛 바라기 좀 해!”
나는 아내와 딸아이에게 소리친다.
“싱겁긴! 건너편 아파트 사람들 다 보겠네.”
시큰둥하다. 그래도 나는 햇볕 한 톨 놓치고 싶지 않다. 몸이 초콜릿 쿠키처럼 노릇노릇 익어가는 기분이 좋기만 하다.
6년전만 해도 볕이 종일 들었다. 그때는 햇볕 귀한 줄 정말 몰랐다. 그러던 것이 건너편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해가 귀해졌다. 오전 11시 20분쯤 거실로 해가 들어와 오후 1시 10분쯤 아파트 너머로 사라졌다. 언제부턴지 주말이면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볕이 기다려졌다. 햇빛의 값은 얼마일까?
퇴직을 생각하면서부터 전원생활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평수를 기피하던 내게는 호재였다. 집만이 아니었다. 텃밭까지 200평이나 딸렸다. 그런데도 가격이 시세의 반도 안 됐다. 급매물인가 보다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틀림없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그집의 방향을 물었다.
“북향입니다.”
갑자기 부동산 중개인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다. 그러고 보니 시세의 나머지 반은 햇빛의 가격인 셈이었다. 햇빛은 체온을 상승시켜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햇빛 사라지기 전에 발이라도 한번 들이밀어 봐.”
내 재촉에도 아내는 여전히 시큰둥하다. 슈퍼의 물건값은 잘 알면서도 햇빛 가격은 모르는 모양이다. -2012.3월 좋은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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