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손을 베였다.
보던 책을 접어서 책꽃이 위에 던진다는 게 책꽂이 뒤로 넘어가는 것 같아, 넘어가기 전에 그것을 붙잡으려 저도 모르게 냅다 나가는 손이 그만 책꽂이 위에 널려져 있던 원고지 조각의 가장자리에 힘껏 부딪쳐 스쳤던 모양이다. 산듯하기에 보니 장손가락의 둘재 마디 위에 새빨간 피가 비죽이 스며 나온다. 알알하고 아프다. 마음과 같이 아프다.
차라리 칼에 베었던들, 그리고 상처가 좀더 크게 났던들, 마음조차야 이렇게 피를 보는 듯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칼 장난을 좋아해서 가끔 손을 벤다. 내가 살앙는 사십 년 가까운 동안 칼로 손을 베여 보기 무릇 기백 회는 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그 상처에의 아픔을 느꼈을 뿐 마음에 동요를 받아 본 적은 없다.
그렇던 것이 칼로도 아니고 종이에 손을 베인 이제, 그리고 그 상처가 겨우 피를 내어 모를 만치 그렇게 미미한 상처에 지나지 않는 것이언만 오히려 마음은 아프다. 종이에 손을 베이다니! 종이보다도 약한 손, 그 손이 내 손임을 깨달을 때 내 마음은 처량하게 슬펐던 것이다.
내 일찍이 내 손으로 밥을 먹어 보지 못했다. 선조가 물려준 논밭이 나를 키워 주기 때문에 내 손은 놀고 있어도 족했다. 다만 내 손이 필요했던 것은 펜을 잡기 위한 데 있었을 뿐이다.
실로 나는 이제껏 내 손이 펜을 잡을 줄 알아 내 마음의 사자使者가 되어 주는데만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펜이 바른손의 장손가락 끝마디의 왼모에 작은 팥알만 한 멍울을 만들어 놓은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었다. 글 같은 글 한 줄 이미 써놓은 것은 없어도 그것을 쓰기 위한 것이 만들어 준 멍울이라서 그 멍울을 나는 내 생명이 담긴 재산같이 귀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온갖 불안과 우울가지도 잊게 하는 내 마음의 위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멍울 한 점만을 가질 수 있는 그 손은 이제 확실히 불안과 우울을 가져다 준다. 내 손으로 정복해야 할 그 원고지에 도리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네가 그 멍울의 자랑만으로 능히 살아갈 수가 있느냐’ 하는 그 무슨 힘찬 훈계도 같았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손은 불소시개의 장작 한 개비도 못 팬다. 서울로 이주를 온 다음부터는 불쏘시개의 장작 같은 것은 내 손으로 패어져야 할 사세事勢인데 한번 그것을 시험하다 도낏자루에 손이 부풀어 본 후부터는 영 마음이 없다. 그것이 부풀어서 터지고 또 터지고 그렇게 자꾸 단련이 되어서 펜의 단련에 멍울이 장손가락에 들 듯, 손 전체에 굳은 살이 확 퍼질 때에야 위안이던 불안은 다시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련만 그 장손가락의 멍울을 기르는 동안에 그러할 능력을 이미 빼앗겼으니 전체의 멍울을 길러보긴 이젠 장히 힘든 일일 것 같다.
그러나 역시 그 손가락의 멍울에 불안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내 생명이기는 하다. 그것에 애착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때 나라는 존재의 생명은 없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 자처하고도 싶다.
하지만 원고지를 정복할 만한 그러한 손을 못 가지고 그 원고지 위에다 생명을 수놓아 보겠다는 데는 원고지가 웃을 노릇 같아 손을 베인 후부터는 그게 잊히지 아니하고 원고지를 대하기가 두려워진다. 손이 부푼후부터는 도낏자루를 잡기가 두려워지듯이...
-조선문단 1940.10
책 모던수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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