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찬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섰다. 엊그제까지 곱던 단풍이 11월 삭풍에 져버리고 들녘은 처음의 모습으로 새벽잠에 빠져있다. 도둑처럼 인천공항 길로 들어선다.
나는 지금 인도에 간다. 오랫동안 인도는 영혼의 불빛인 양 내 안에 불 켜 있었다. 가난하다는 땅, 영국의 식민지로 신음하던 땅, 오래전에 석가모니 불타가 탄생하신 성지, 나를 손짓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도에는 금세기의 성녀 마더 데레사가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시작한 곳으로 아직도 인류를 위한 봉헌이 이어지고 있고 시성 타골의 신에게 바치는 노래 <기탕잘리>가 녹아있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영혼 간디가 영원히 살아있는 곳이다. 나는 그 위대한 땅을, 그 위대한 정신을 만나려고 간다.
지난 몇 년 내 의식은 낡을 대론 낡아 있었다. 나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의식과 내 안으로 잠입하려는 의식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의문을 갖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인도로 간다. 염치도 좋게 원고청탁 다 펑크 내고 강한 영적 힘이 사로잡는다는 인도로 간다. 님이시여, 부디 이 발걸음에 축복주소서.
싱가포르에서 여섯 시간을 기다려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양 창공을 나는 야간비행 그래 그런지 기내는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탑승객 대부분이 코가 오똑하고 눈이 깊은 인도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아한 샤리로 몸을 감았는데 샌들을 신은 발은 맨발이 많다. 인상이 조용하다. 눈동자가 자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멈춰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소통하고 나면 그들은 헤어질 때 손을 꼭 잡는다. 이마에는 인장처럼 진홍색 꽃잎을 붙이고 코 부리에 얹은 보석은 어느 카스트의 표시일까.
이 인도양을 건너면 인디아, 영의 땅에 다다를 것이다. 맥주 한 캔으로 목을 축이고 차오르는 취기로 저 아래 세상을 바라본다. 누가 하늘에서 다이아몬드를 삼태기째로 뿌렸는가. 빛의 마을, 빛의 무덤 , 명멸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저렇듯 황홀한데 왜 슬픔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농장에서 일하면서 하늘 높이 떠가는 비행기를 보면 신음같은 탄식을 했다. 한평생 여행만하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에 일손을 놓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꿈꾸던 곳에 다녀오고 나면 또 다른 곳에 가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아름다웠다 .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나는 몸체가 마치 은어와도 같아서 태평양을 헤엄쳐오는 것 같았다. 그 안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기수가 서울을 향하는 비행기면 지금쯤 승객들은 조금쯤 피곤한 모습으로 가족에게 돌아오는 기쁨에 들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행의 끝은 돌아가는 것이다. 그럼 이 지구로 여행 나온 우리들이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상상의 나래는 끝이 없었다.
비행기 날개 끝 점등의 불빛. 그 불빛 위로 초승달의 미소, 지구촌 이무기는 수천 미터 상공에서 여행의 주기로 생의 찌꺼기를 배설한다. 저 달이 차오르듯 기다림도 차오르고 인도로 가는 내 꿈도 차오른다.
꿈은 꿈일 때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나도 지금 꿈꾸고 있기에 애달프도록 설레는 것이리라. 잠을 자 두어야겠다. 피곤이 가신 맑은정신으로 그 땅에 첫발을 들여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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