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는 말했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자는
쓸모없는 일을 한다.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잃음의 시작이고
이름 얻고자 하는 마음은 이름 잃음의 시작이다.‘
구함과 이름 얻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사람의 무리 속으로 내려와 사라질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도와 함께 흘러다닌다. 눈에 띄지 않은채.
그는 삶 그 자체가 되어 걸어간다.
집도 없이 이름도 없이
아무 구별함 없이 그는 단순하다.
...
무엇을 이룸도 없다.
그는 이름을 얻지도 않는다.
또한 누구를 판단함이 없기에
아무도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가 완전한 이다.
그의 배는 비어 있다.
-장자 <빈배>
오쇼 라즈니쉬는 <삶의 길, 흰구름의 길>에서 장자의 자아 개념을 밴 배로 설명한다. 여기서 빈배가 의미하는 것은 에고(Ego)를 비움을 의미한다. 자유를 위해 석가가 제시한 공의 논리는 에고를 이루고 있는 껍질들을 벗기는 것, 즉 백팔 개로 상징되는 경험적 욕망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반면 빈 배의 논리는 대상으로부터의 집착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아 자체를 부정하고 끊는 것이다. 스스로의 사라짐을 통해 자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아 자체가 사라진 상태라면, 집착의 대상이 있고 집착의 유혹이 있어도, 내가 없기에 유혹 받을 주체가 없고, 그렇다면 유혹은 무의미해지고, 결국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장자에 따르면 그 작업은 자아의 진정한 본질을 직관적으로 깨닫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진정한 본질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에고는 항상 자아의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분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이것이 욕망이고 집착이다. 그런데 인간이 우주 또는 자연의 일부라면 욕망의 주체인 자아는 더 이상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자아가 될 수 없다. 라즈니쉬의 장자에 따르면 진정한 자아는 우주이다.
<만남-10차원의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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