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스크랩] 박주택의 `폐점` 감상 / 장석남

다림영 2012. 10. 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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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점/박주택-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 본다
자정 지나 인적 뜸할 때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형
한때는 옷을 걸치고 있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불현듯 鬼氣가 서려오고
등에 서늘함이 밀려오는 순간


이곳을 처음 열 때의 여자를 기억한다
창을 닦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옷을 걸개에 거느라 허리춤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도 있었고 커피잔도 있었다


작은 이면도로 작은 생의 고샅길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며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유리문 밖


어느 먼 기억들이 사는 집이 그럴 것이다
어느 일생도 그럴 것이다

 


<감상>
 

 

보증금 1000만원에 권리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 두어 평의 옷 집이었다.
낡은 에어컨 값으로는 밀린 전기세를 대신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먼지 묻은
전구를 닦아 환하게 가게를 밝히고 떡을 돌리고 새 옷들을 떠다가 걸고는
작은 꿈을 이루었노라 웃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았다. 무슨 죄가 있었나?


가을이 되었다. 봄옷과 여름옷들을 먼지를 털어가며 종이 박스에 넣는다.
찢어지듯 소리치는 비닐 테이프를 감아 한쪽에 밀쳐둔다. 다시 풀어볼 때가
있을까? 청춘과 희망을 봉하는 가을이다. 잠에서 깨어 보니 낯선 방이다.
하나 자세히 둘러보니 나의 집이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컴컴한 방이다.
겨우 안심한다. 꿈이 흉했다.


'이면도로'의 인생들을 알고 있다. 경사와 매연이 심한 가족사를 모두 처분
하고 싶은 인생들을 알고 있다. 불 꺼진 인생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얼굴이
나라의 얼굴인 줄도 알고 있다. 상점에 환한 불이 켜지는 나라를 꿈꾼다.

 

-장석남(시인, 한양여대 교수)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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