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가진것 없는 라오스에서 행복을 읽다

다림영 2012. 9.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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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9.조선일보

성병조

대구시교육청 명예감사관

 

S형님. 저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을 거쳐, 경치가 수려하여 라오스의 계림(桂臨)’이라 불리는 방비엥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연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궁금하여 베란다 문을 열었다가 하얀 벽면에 웅크린 도마뱀 때문에 깜작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놀라기는커녕 마치 오래된 이웃처럼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잇습니다. 사람들과도 어울려 생활하는 덩치 큰 개들은 마치 친구와도 같습니다. 식탁아래로 유유히 드나드는 개를 내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심을 벗어나 농촌으로 나가면 도로를 유유자적하는 소떼와 자주 맞닥뜨리게 됩니다. 우리처럼 소에게 꼴을 먹이기 위해서 사람이 뒤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날이 밝으면 스스로 집을 나와 풀을 뜯어먹거나 놀다가 저녁이 되면 정확히 집을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렸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무료하게 지내는 원주민들에 비해 유독 소들의 출퇴근 시간만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왜 나왔는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연중(年中)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 생활하는 삶의 지혜는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하()의 나라이니 의복 걱정이 없으며, 배가 고프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열대과일을 따 먹거나 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어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 주는 것이겠지요.

 

닭울음 소리는 종종 들려도 개 짓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만 보아도 이곳이 도둑 걱정 없이 살아가는 얼마나 평온한 곳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테지요. 비포장도로인 데다 워낙 차량이 적다 보니 교통사고 우려가 없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경쟁과 욕심이 없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 본래의 모습과 그들의 속성을 따르는 가축들 속에서 이곳 특유의 행복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트럭을 보완하여 만든 대중교통수단을 타고 산골짜기로 난 먼 길을 달렸습니다. 황토물이 넘치는 쏭강을 왼쪽으로 끼고 덜컹거리며 달려간 곳은 한적한 시골 초등학교였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도착하자 아이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우리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관광객들이 찾아오면 종종 학용품이나 먹을거리를 주는 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학교는 마치 수용소처럼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건물이라고 말하기조차 궁색한 초라한 학교 시설, 발목을 덮는 무성한 풀밭, 건물을 짓기 위해 힘들여 찍어놓은 흙벽돌이 스산함을 더욱 부채질하였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태도였습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땟물이 흐르는 아이들이 내미는 고사리 손에 학용품을 쥐여 주니 다투는 사람도, 적게 가졌다고 불평하는 아이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적게 받은 또래 친구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는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우리의 1950년대를 찾아내고 속울음을 울었습니다. 미군들을 따라다니며 껌이나 과자를 얻기 위해 애쓰던 어린 내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문명 사회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서 불행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국민의 평균수명이 겨우 60세라고 합니다. 어디를 가도 노인들의 모습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한국의 1950~60년대에 견주어 보아도, 그때의 우리보다 더 가난하면 가난했지 조금도 나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는 이가 기생한다고 합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성장발육이 더디고, 주거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아이들에게서 밝은 내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건네주는 일시적인 호의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라오스인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또 다른 요소는 내세관(來世觀)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비록 짧은 생(生)을 살지만 다음 세상을 굳게 믿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장작을 포개어 화장한 후 유골을 가가운 납골당에 안치하는데 이 과정을 무슨 축제처럼 여긴다는 설명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졌습니다.

 

매일같이 전쟁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아주 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많이 팔리지 않거나 적게 팔려도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한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는 그들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웃가게의 물건 매상에는 아예 상관조차 않는다고 합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무엇이든지 내주려고 하는 그들의 고운 심성이 돋보입니다. 비포장 산악도로를 달리다 버스의 타이어가 펑크나는 바람에 어렵사리 찾아간 카센터에서도 이런 소박한 인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낯선 손님을 위해 집안 곳곳의 의자를 몽땅 내놓는 안주인의 배려는 짙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많이 가진 부자만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이번 여행에서 얻은 소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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