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지나치지 않음에 대하여

다림영 2012. 9. 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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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9월17일


지나치지 않음에 대하여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한다.

아침 신문도 우울했다.

지나친 속력과

지나친 욕심과

지나친 신념을 바라보며

우울한 아침,

한잔의 차는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케한다.

손바닥 그득히 전해오는

지나치지 않은 찻잔의 온기

가까이 다가가야 맡을 수 있는

향기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지나친 세상의 어지러움을 끓여

차 한 잔을 마시며

탁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세상의 빛깔과

어디 한 군데도 모나지 않은

세상살이의 맛을 생각한다.


-박상천(1955~)



일등말고 중간쯤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일등, 세계 최고, 일류를 강조하는 세상이다. 본인은 아니어도 자녀는 일등을 하라고 내몬다. 그러다가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세속을 떠날 수 없는 범인(凡人)들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데 그들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서열이 있는 한 반드시 중간이 있고 꼴찌가 있는데 그들은 다 죽는다는 말 같아 아프다. 실은 모두가 일등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각자의 생(生)인데 그들이 몇 등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런맥락에서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김기덕 감독의 소식은 통쾌하다(일등상이 아닌 황금사자라는 상 이름은 얼마나 멋진가!) .


시도 예술도 깊이 대신 번쩍번쩍 기교가 늘어간다. 이목을 끌기위해서다. 대교약졸(大巧若拙.매우 교묘한 솜씨는 서투른 것같이 보인다)라고 했던가. '찻잔의 온기'같은 이 담담한 시의 풍경과 진술 속에서 평범함의 위안과 휴식을 구한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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