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너도 밤나무/김상미

다림영 2012. 4. 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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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밤나무/김상미

 

 

언제나 나는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고 또한 죽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걸 알기에 아침마다 울리는 생의 팡파르에 지난날의 먼지로 분탕질하지 않았으며 분수에 맞지 않는 새로움을 찾아 헤매며 쓰디쓴 가면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떠나간 사랑에 연연해하며 노하지도 않았으며 쓰라린 사람들의 마음에 진부한 동정의 깃발도 꽂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걸어갔습니다.걷기만 했습니다. 우거진 푸른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가파른 산길에 정답게 쭈그려 앉은 바위와 유쾌한 산들바람에 엽서같이 작은 내 몸을 맡겼을 뿐입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어도 날마다 깨어나 웃는 내가 고맙고 반가워 진심을 다해 나를 돌보았습니다. 정말 그리운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마음만 먹으면 당장 그들 곁으로 달려갈 수 있기에 하나도 조급해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 진심만을 교실에 남아 공부하는 학생처럼 또박또박 복습하고 또 복습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겹고 하루하루가 불안했지만 그래도 나는 즐겁게 웃으며 나를 돌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비웃지 마십시오. 온 힘을 다해 웃는 내 마음 안에는 아직도 별들이 총총합니다. 그 외롭고 선한 기운 따라 어두운 지구 위 엽서같이 작은 나를 찾아오십시오. 그 곁에 고향처럼 아주 오래된 너도밤나무 한 그루 환하게 불 켜고 서 있을 겁니다.

 

월간<현대시각>2010년 4얼호

 

책 2010 올해의 좋은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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