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어떤 개의 죽음 /이태동

다림영 2011. 6. 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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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늦봄, 그러니까 모란이 피는 오월 어느 날 아내는 식탁에서 그녀가 나가는 의과대학 생화학 교실 선배인 김 교수가 종자가 좋은 강아지 한 마리를 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가족들에게 물었다. 우리집은 조그마한 드락 있는 데다 낮에는 가족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 이모는 오래 전부터 사납고 잘 짖는 개 한마리 키웠으면 한다는 말을 소원처럼 해왔던 터라 아이들은 물론 모두 다 좋다고 했다.

 

나는  김 교수 댁에서 왜 갑자기 값비싼 강아지를 우리에게 주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김 교수의 개가 이웃집의 도베르만이라는 독일 애완용 개와 교미를 해서 강아지를 두 마리 낳았는데 젖을 떼자마자 우리에게 주려 한다고 했다. 내가 자꾸 캐묻자, 우리에게 준다는 강아지가 마당의 잔디밭을 자꾸만 파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 했다. 김교수님 내외분은 강아지를 아기는 마음에 다른 집보다는 우리가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튿날 아내는 그 집으로 가서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상자에 강아지를 담아서 차에 실어왔다. 반갑고 궁금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 뚜겅을 열어보았더니, 까만 몸에 다리 끝에 자줒빛 털이 난 미근하게 잘생긴 강아지가 작은 방울이 달린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그놈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귀가 똑바로 서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축 처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눈은 영롱하게 빛을 발하기보다는 슬픔이 가득 차 보였다. 나는 그놈의 슬픔이 목에 드리워진 사슬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곧 목에서 사슬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그놈을 욕실로 데려갓 목욕을 시켜주었고, 가게로 달려가서 우유를 사다주었다.

 

웬만하면 실내에서 키워보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놈은 쉴 새 없이 아래위층으로 뛰어 다녔다. 그놈은 내가 글을 쓰는 책상 위에 뛰어올라 필갑을 넘어뜨리고 잉크병을 방바닥에 떨어드릴 정도로 소란을 떨었다. 무덤덤하게 사람을 좋아하면 좋으련만 너무나 가까이 달려들어 혀로 몸을 핥으며 심하게 소란을 떨었다. 게다가 마룻바닥을 변으로 더럽히기가지 해서 몹시 곤란했다. 가족들은 그놈을 교육시키면 변을 가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약 일주일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그놈의 태도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놈의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 며칠을 욕실에 가두어두기로 했다.

이틀동안 그놈은 그 안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그러나 사흘째 되던날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풀려난 해방감 때문인지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날뛰었다 . 주임교수 댁 사모님은 그 개가 가끔 땅을 파지만 어미 성격으로 봐서 길만 잘 들이면 온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지만, 우리는 참으로 성가시기 짝이 없었으며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내는 그놈을 밖으로 내어놓았다. 마당의 잔디밭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어찌 좁은 실내 공간에 비할 수 있으랴.

그놈은 자유롭게 움직일 충분한 공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개집을 만들어주기 전까지 욕실에서 잠을 자게 했다. 놈은 푸른잔디가 있는 넓은 공간을 가졌지만 그것도 부족했는지 잔디밭을 심하게 파기 시작했다 . 내가 소중하게 가꾸어놓은 잔디밭을 파헤친 것을 보았을 때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러나 몇 번 야단을 치면 땅을 파는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참았지만 미운 생각이 들어서 그날부터는 그놈을 욕실에서 재우지 않고 그냥 밖에서 재웠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구를 묻으려고나 한 듯이 그놈이 잔디밭 기슭을 묘지처럼 파놓은 것이 보였다. 나는 치솟는 화를 억누르고 잔디가 죽을까 염려스러워 흙을 다시 묻고, 손을 씻기 위해 잔디밭 옆으로 돌아 수도꼭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그놈이 파놓은 또 하나의 구덩이를 보고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고, "개가 땅을 파면 좋지 않다"고 하신 어머니 말슴이 생각났다.

 

나는 그길로 철물점으로 달려가서 목걸이 달린 쇠사슬을 사가지고 와서 그놈을 대문 옆에 세워놓고 낡고 무거운 참나무 수레바퀴에다 매어두었다. 그러자 그놈은 시끄럽게 짖고 울어댔다. 아이들은 그놈이 울 때마다 풀어주자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나는 며칠 동안은 괴롭겠지만 곧 익숙해지리라고 믿고 그대로 두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놈이 나무 밑 차가운 돌위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나 역시 내심 몹시 안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을 맞은 큰아이가 친구와 함께 새로 집을 짓고 있는 뒷집 공사장에서 질이 좋은 나뭇조각을 얻어다 익숙하지 못한 솜씨였지만 그럴듯한 집을 지어주었다. 작은 개에 비해서는 큰 집이었다. 큰아이 덕분에 강아지는 밤에도 이슬을 맞지 않고 잘 수 있었다. 또 아이들은 그놈을 가축병원으로 데려가서 전염병 예방 접종을 시켰는가 하면 한 달을 두고 두 번식이나 광견병 예방 주사를 놓아주었다. 큰아이는 마지막 예방 접종을 마치고 나서 군에 입대했다. 우리는 그놈을 며칠 동안 집에 묵어두었다가 낮에는 풀어주고 밤에는 다시 개집 앞에 묶어두면서, 그놈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러나 당을 파는 버릇은 결코 고쳐지지 않고 점점 심해가기만 했다. 풀어주었다가 다시 묶어두면 심하게 울어댔다. 우리는 그놈이 겪는 만큼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 그녀석을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가꾸어온 잔디밭을 더 이상 상하게 할 수도 없고, 어머님의 불길한 말씀이 자꾸 생각나서 그놈을 영영 묶어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모와 딸아이가 개집으로 내려가서 가죽끈에 묶인 개의 목을 쓰다듬어주며 안타까워하는 것을 서재의 창문으로 바라볼 때면 나의 마음도 몹시 아팠다. 우리는 그렇게 10여일을 보냈다. 물론 아이들 이모와 딸아이 그리고 나는 묶여 있는 그놈을 두고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다.

 

이윽고 마지막 일요일이 왔다. 개집을 청소하기로 하고 아내와 나는 개집 주변을 물로 닦았지만 그리 깨끗해지지 않고 심히 악취가 나서, 다시 소독을 하고 비누로 깨끗이 닦아주기로 했다. 청소할 동안 개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고, 자유롭게 된 그놈은 잔디밭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러나 사슬에 묵여 있기 때문에 사슬을 밟을 때면 목이 심하게 죄는 것을 보고 그놈의 목에서 가죽끈을 풀어주었다. 얼마나 자유로웠으랴. 그놈은 정말 좋아 날뛰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 온 지도 한 달이 훨씬 넘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가 개집 앞 바닥을 닦은 물을 밖으로 버리기 위해서 대문을 열었다. 그때 마당에서 뛰어놀던 그놈이 어느새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놈은 한참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놈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개장수에게 끌려가 보신탕집으로 팔려가지 않고, 다른 집으로 들어가 착한 사람을 만나 며칠 지내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막연하게 기다렸다. 그놈의 행실로 봐서는 다른 어느 집에서도 머물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문을 열어두고 가끔 밖으로 나가보았다. 골목길은 마치 묘지처럼 조용했고, 그놈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십중팔구 보신탕집으로 끌려가 참혹한 죽음을 당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놈이 집을 나간 후 며칠 동안은 가끔 그놈을 찾으며 골목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번번이 혼자 지쳐 돌아오며 몇 번이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놈이 사람이 아니라 개였기 때문에, 절대적인 자유를 찾는 길이 죽음으로 이끈다는 것을 몰랐겠지. 조그마한 부자유와 불편은 참았어야지.쯧쯧.... 그것이 제 삶의 조건인데, 쯧쯧.... 이 세상에 어디 완전한 자유가 있겠는가? 불쌍한 것. 쯧쯧....."

<책-밤비오는 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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