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유쾌함으로 가득한 인생을 타박타박 더듬어가고 있는 나는, 내가 언젠가 한 번은 도착해야 할 죽음이라는 경지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것을 삶보다는 편안한 것이라고만 믿고 있다. 때로는 그것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적도 있다.
'죽음은 삶보다 존귀하다.'
요즘에는 이런 말이 끊임없이 내 가슴속을 오가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지금 실제로 살아있다. 나의 부모님, 나의 조부모님, 나의 증조부모님, 그리고 순서대로 거슬러 올라가 백 년, 이백 년 내지 천 년, 만 년 동안에 길들여진 습관을 나 한 세대에서 해탈할 수가 없기에 나는 여전히 이 생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조언은 아무래도 이 생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좁은 구역 안에서만 나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인류의 한 사람을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생 속에서 활동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또 그 생속에서 호흡하는 타인을 인정한 이상, 서로의 근본 의는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추해도 이 생위에 놓인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만약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라면 죽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런 말은 제아무리 매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에서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의사는 편안한 잠으로 향하려는 환자에게 일부러 주사바늘을 꽂아 환자의 고통을 한시라도 더 연장할 방법에 골몰한다. 이처럼 고문에 가까운 행위가 인간의 덕의德義로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억척스럽게 생이라는 한 글자에 집착하고 있는 지 알수 있다. 나는 끝끝내 그 사람에게 죽음을 권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의 가슴에 도저히 회복될 가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동시에 그 상처가 평범한 사람의 경험에는 없을 아름다운 추억의 씨앗이 되어 그 사람의 얼굴을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아름다운 것을 보석처럼 소중하게 그녀의 가슴속에 영원히 품고 싶어했다.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운 것은 곧, 그녀를 죽음 이상으로 괴롭히는 상처 그 자체였다. 2가지 사실은 종이의 앞뒤처럼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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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죽음에 관한 생각에 젖어드는 요즘이다. 가까운이의 불같은 죽음을 만났고 큰 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여기저기 알수없는 병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두렵기도 하다. 욕심스럽게 달려가던 삶의 길에서 멈추어 여기저기에 시선을 준다. 문득 지난날 좋아했던 음악들을 만나며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삶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만 내달리던 오늘에서 한걸음 물러나 지금을 사랑하기로 한다. 꽃을 키우고 초록잎들을 가까이 한다. 깨끗하게 주변을 정리하며 환해지는 마음을 본다. 아무것도 아닐수 있는 일들에 애정을 지니기로 한다. 일상에 쫒기며 정신을 잃던 나를 토닥여준다.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던 글읽기를 다시 시작하고 잊었던 글쓰기도 해보며 눈부신 봄날을 맞는다. 문득 조용해지는 나를 만난다.
좋아하던 그의 책을 샀다. 받는순간부터 즐거움을 만날수 있었다. 잔잔한 글을 따라가며 그 옛날 그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다. 조용하고 봄밤에 내리는 비같은 그의 글을 나는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