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문제를 오래도록 탐구해왔지만 지금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답을 제출한 철학자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여자뿐이다. 남자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인지 모른다. 예를 들어 여자는 “사랑하고 있다면 핸드백 사줘!”라든가 “사면 안되는거야? 사랑하지 않는거야?” 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아내는 상담도 없이 욕망에 끌리는 대로 산다.) 무언가 사고 싶을 때는 ‘사랑한다며?’라고 하는 어구를 붙여도 좋은 건가? 남자가 “사랑한다면 통근가방을 사게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하면 “그런 상관도 없는 일로 사랑을 들먹이지 마요.”라고 한다. 어째서 핸드백이나 가방이 이렇게 차이가 있는 걸까. 남자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좀 더 공손하게 부탁하면 괜찮을까 하고 생각해서, 남자가 “사랑한다면, 거기 있는 신문을 좀 집어줘!”라고 하면 “정신 나간 소리를 할 여유가 있다면 쓰레기 버리고, 오래된 신문을 정리하고, 빨래나 걷어요~” 라고 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뿐이다.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여자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결론을 내는 것인지 미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의 피나는 경험으로 알게 된 것으로는, 사랑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핸드백은 사지만 남자 가방은 사지 않는다. 어떤 요리를 내놓더라도 명료한 목소리로 “맛있어.”라고 감탄하면서 한 숟가락도 남기지 않고 먹는다.(슈퍼마켓의 반찬 코너에서 산 것은 감탄하지 않는다.) 무언가 부탁받았을 때는 싫은 얼굴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아프다던가 독촉을 받아도 싫은 얼굴은 하지 않는다. 재차 독촉 받았을 때는 납득 할 수 있는 이유를 준비한다. 수십 년 전의 약속이나 상대방의 생일 등을 잊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름을 잊지 않는다. 차를 달라든가 신문을 갖고 오라든가 등 부탁하지 않는다. (특히 상대방이 수면 중이든지, 열이 나거나 할 때) 옷이나 머리모양이 바뀌었다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모습이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어도 재빨리 알아차린다. 상대방이 먹는 것 중에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이나 바닥에 떨어진 것을 살짝 섞어 놓지 않는다. 위험한 장소에 앞장 세우는 짓을 하지 않는다. 등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요약하면, 사랑은 ‘아낌없이 뺏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편이 행 복하다“, 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불행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자는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사랑에 대해서는 추측할 수 밖에 없다. 매일 매일이 학습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한다면 핸드백을 사줘.“라고 했을 때, ”어제 TV에서 젊은 여자가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에게는 돈을 쓰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사랑하고 있다면 가능한 한 사지 않도록 해야 되는 거 아니야?’하고 반론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따로 돈 관리를 하고 있을 때뿐이죠”라고 한다. 남자는 이럴 때 처음으로 ‘따로 돈 관리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가 사랑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집처럼 아내가 돈 관리를 독점관리하고 있는 경우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돈 관리를 따로 해 주지 않겠소?‘ 하고 제안하면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은거야?’ 하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변하려고 해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지 알 리가 없다. 만일,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사랑하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다”고 정직하게 대답하면, “그런 무책임한 태도로 나랑 사귄 거야? 그러면서도 당신이 인간이야?” 한다. 이번에는 ‘인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색 할 필요가 생긴다.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말을 들을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에 여자로부터 “사랑하고 있다면 올림픽마라톤에서 우승해봐.” 라든지 “사랑하고 있다면 오늘 중으로 죽어!”라든가 “사랑하고 있다면 나를 사랑하지마!”라는 말을 듣게 되는 건 아닌지 하고 생각해 본다. <홍차를 주문하는 방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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