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더블린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더블린은 이상하게도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도시였지만 그 도시 이름을 듣기만 해도 매우 친근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영국에서 아일랜드의 비자를 얻기 위해서 열흘가량 머물러 있으면서 나는 그동안 피로에 몰려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차라리 그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비자를 기다리는 상태에서 앓았으니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방학 중이라 텅 빈 옥스퍼드와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 에이번을 돌고 있을 때 아무래도 찬비를 맞은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호텔 방에서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천 근처럼 무거워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겨우 가게까지 나가 바나나를 잔뜩 사다 놓고 호텔방에서 이틀을 내리 자고 그리고 앓았다. 나중에는 호텔을 청소해 주던 영국의 노인(영국 사람들은 나이 먹은 사람들도 은퇴하고 나서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내게 무슨 오렌지 분말 주스를 두어 개 주기에 그것을 더운 물에 타 먹으니까 땀이 솟고 그리고 나았다.
휘청이는 몸을 이끌고 더블린행 비행기를 탄 것은 국제 비행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영국 국내를 취항하는 국내선 비행기였다.
아시겠지만 아일랜드의 저항 정신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들정도로 수백 년에 걸친 독립 운동을 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북아일랜드의 신교도와 가톨릭과의 싸움은 종교분쟁이라기보다는 계급 투쟁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아일랜드는 공업지대인 북아일랜드를 돌려 달라고 수차 영국에 항의 내지는 무력 충돌을 하고 있으나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현재에 있어서 아일랜드는 유럽의 가장 현저한 빈국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의 반항 정신이 얼마나 강한지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영연방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아일랜드는 아직 영국의 입김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는, 엄연히 다른 나라임에도 영국 국내선이 있으며 두 나라는 서로 같은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자기 고유문자(물론 영어에서 파생된 말이다)를 가지고 있고 독립 이후에 그것을 사용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역시 공용어는 영어였다. 그러나 나는 아일랜드를 좋아한다.
아일랜드는 자주 어떤 의미로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비교 되고 있다.
아일랜드가 낳은 위대한 작가 유진 오닐은 비록 미국에서 활동하였지만 작품마다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귀신에 홀린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곤 했었다. 수백 년 동안 영국을 향해 저항하였던 저항 정신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약간 염세적이며 운명주의자인 아일랜드인들은 유진 오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말 귀신에 홀린 사람들처럼 비쳐지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을 모두 낡은 옷을 입고 있었고,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걸인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중에 한 사람은 오코넬 다리에서 하모니카를 불면서 동냥을 구했는데,내가 동전을 한 닢 주자 하모니카를 걷어치우더니 술집으로 들어갓으며, 더블린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은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과 다름 없었다.
다른 유럽의 강과는 전연 달랐다. 물이 맑고 강 위에 유람선이 떠도는 그런 강이 아니라 더럽고 지저분한 개천에 불과하였다.
거리의 건물이나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약간 시대에 뒤떨어지는 옷차림으로 저녁 무렵 댄스홀(더블린에서는 이 댄스홀이 젊은이들이 모이는 유일한 사교장인 것으로 보여졌다)로 모여드는 젊은이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더블린.
‘어두운 웅덩이’라는 뜻을 가진 더블린 도시는 문자 그대로 어둡고 우울하며, 약간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죄송한 이야기지만 여인들은 대부분 못생겼는데 그것은 못생겨서라기보다는 자기 몸을 가꾸지 않는 습성에서 기인된 것 같으며, 다들 어딘가 몽상적인 꿈속에 빠져 있는듯한 거리와 몽유병자와 같은 행인들의 걸음걸이.
이것이 내가 더블린에서 내려,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다는 친절한 아일랜드인이 바래다주는 차 속에서 느긴 더블린의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일랜드를 사랑한다. 이유를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일랜드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누구든 아일랜드의 민요를 한두 곡 모르고 자라난 사람이 있겠는가. 황량하기만 한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의 초원은 가파르게 갈라진 대서양의 끝과 연결되어 있다. 고독하고 쓸쓸하게 대서양 연안에 던져져서.
그러나 그뿐만 아니다. 이 작은 나라는 수많은 세계의 위대한 문학가를 배출하였다.
조너선 스위프트, 버나드 쇼, 제임스 조이스, 유진 오닐, W.B.예이츠, J.M싱,그리고 최근에는 베케트.....
열손가락으로도 모자라는 위대한 작가와 시인, 희곡작가를 배출한 나라가 바로 아일랜드다.
황무지 같은 아일랜드는, 그들의 저항의식은, 그들의 운명적인 염세 철학은, 작가를 만들기에 매우 알맞은 풍토였던가.
“대단히 침울한 얼굴을 한 사나이가 오코넬 다리에서 샌디마운트로 가는 작은 전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섰다. 그는 원한과 울화가 목구멍에 가득하였다. 주머니 속에는 단 두 푼이 남아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저주 하였다. 일터에서는 저절로 그르쳐 버리고 시계는 저당 잡히고 돈은 다 떨어지고 술은 취하지도 않았다.”
위의 짧은 문장은 제임스 조이스의 걸작<더블린 사람들>이라는 단편집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 지금도 더블린의 골목골목을 지나노라면 제임스 조이스가 애정을 가지고 보여주려 애를 쓰는 ‘더블린 사람들’이 거의 백 년 전의 그때처럼, 작품 속의 주인공들처럼 생생하게 재현되어 오는 것이다.
오늘도 침울한 표정으로, 주머니에는 단 두푼이 남아 있고 술은 취하지도 않은 더블린의 시민이 악취를 풍기는 오코넬 다리위에서 그때처럼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블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더블린은 살아 있다. 그것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국가에 대한 공헌일 것이다.
그러나 의외였던 것은 왜 이 나라에서는 그들이 낳은 작가에 대한 기념관이 하나도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아일랜드는 워낙 수많은 작가를 배출한 탓일까, 그런 면에서는 손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버나드 쇼의 생가를 찾아서 더블린을 헤맬 때의 얘기였다. 길거리의 누구를 버나드 쇼의 이름을 대 봐도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였다.
손바닥만 한 지도를 들고 겨우 찾아갔더니 그 집 앞엔 단순히 “이곳에서 버나드 쇼가 1856년에 출생하였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이탈리에서 왔다는 남년 두 사람이 그 집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그 집을 두드려 문을 열려고 하지 그들은 나를 보며 말hk 을 건넸다.
“개인 집이다. 그 집은....”
“개인 집이라니, 버나드 쇼의 생가인데, 틀림없이 버나드 쇼의 기념관일 것이다.”
런던에서 찰스 디킨스의 생가를 찾아가 찰스 디킨스의 손자벌 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념관을 돌아보았던 경험이 있는 나는 버나드 쇼와 같은 위대한 작가의 생가를 그대로 개인 집으로 방치해 둘 것이 만무하다고 생각해서 그 집을 두드렸더니 에이프런을 두른 사십대의 비대한 여주인이 손을 씻으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저어, 들어가도 됩니까?”
내가 물었더니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소아보았다.
“당신 누구요.”
“버나드 쇼의 생가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버나드쇼?”
그 여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벌써 죽었소. 우린 버나드 쇼와는 아무 상관이 없소.”
문이 덜컹 닫혔다.
그것보라는 듯 이탈리아인 둘이서 낄낄대고 나를 향해 웃더니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것 봐요. 내가 뭐라고 그랬소. 개인 집이라고 그랬지.”
그날 저녁 있었던 일화는 차마 엉터리 같은 얘기여서 생략할까 했지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런던 주재 아일랜드 대사관에 있던 사람은 내가 이런 일로 아일랜드를 방문하겠다고 하니가 아일랜드 문화원을 소개해 주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국가 공무원을 만나 그들의 판에 박힌 공짜 안내를 받는 것이 질색이라 저화조차 하지 않고 혼자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시장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에게 제임스 조이스의 흉상이 거리에 붙어 있는( 이 이야기는 호텔 근처의 가게 주인에게 들었다) 그 위치가 어디쯤인가를 묻자, 갑자기 그는 힛히히 크게 웃더니 다음 골목으로 돌아가라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그쪽으로 돌아가 보니 과연 제임스 조이스 하우스가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임스 조이스 하우스가 아니라 싸구려 술을 파는 선술집의 간판 이름이었을 뿐이다.
책 휴일의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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