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7월 4일 수요일
정민의 世設新語
사도세자의 문집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를 읽는데 ‘심(心)’이란 제목의 시에 눈이 멎는다. “날뛰는 맘 억누르기 어려워 괴롭거니, 들판 비워 기(旗)를 들면 적이 침범 못하리. 묵은 거울 다시 갊도 원래 방법 있나니, ‘경재잠(敬齋箴)’을 장중하게 일백 번 외움일세.(心猿意馬苦難禁,淸野搴旗敵不侵.古鏡重磨元有術,百回莊誦敬齋箴.)”
그는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었다. 가눌길 없는 마음을 추스르기에 힘이 겨웠던 모양이다. 먼저 1.2구. ‘날뛰는 맘’의 원문은 ‘심원의마(心猿意馬)’다. 마음은 원숭이처럼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생각은 미친 말인 양 길길이 날뛴다. 꽉 붙들어 지수굿이 눌러두려 해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청야(淸野), 즉 들판을 깨끗이 비운다는 것은 전쟁에 앞서 들판의 곡식을 베고 집을 헐어, 적이 양식을 구하지 못하고 쉴 곳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즉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다.
깃발을 높이 든다는 것은 보통은 적 지휘부의 깃발을 빼앗는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깃발을 높이 들어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적에게 보여준다는 의미로 썼다. 날뛰는 마음은 비워서 가라앉히고, 들레는 마음은 추슬러 진정시킨다. 그러면 적이 쳐들어와도 끄떡없다.
다시 3.4구.고경()슨구리 거울이다. 거울도 마음의 비유다. 녹슨 거울은 사물을 못 비춘다. 때가 낀 마음은 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찌해야 하나. 정성껏 다시 갈아서 본래의 제 빛을 찾아주어야 한다. 거울을 가는 방법은 주희(朱熹)가 지은 ‘경재잠’을 100번쯤 장중하게 소리 내서 외우며 천천히 갈면된다. 마음이 급해 성급하게 갈면 표면이 긁히고 상해 아예 못 쓰게 되기 쉽다.
주희는 ‘경재잠’에서 이렇게 말했다.“문 나서면 손님같이, 일할 때는 제사 지내듯. 전전긍긍 조심하여, 감히 쉽게 하지말라. 입 지킴은 물병 막듯, 뜻 막음은 성채인 양. 조심조심 살피어서 감히 가벼이 하지 말라.(出門如賓,承事如祭.戰戰兢兢,罔敢或易,守口如甁,防意如城.洞洞屬屬.母敢或輕)”이렇게 조심조심 힘을 빼고 되풀이해서 마음밭을 갈면 잃었던 빛이 다시 환하게 돌아온다. 영대(靈臺)가 맑아진다.
사람들은 원숭이나 말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제 마음은 안 돌아보고, 저마다 일없는 세상을 구하고 말겠다며 온통 난리다.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신문에서 배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취비농甘脆肥農 (0) | 2012.08.09 |
---|---|
풍중낙엽(風中落葉) (0) | 2012.07.17 |
재여부재(材與不材) (0) | 2012.06.19 |
경제불황 때의 남편감 (0) | 2012.06.02 |
스팩이 휴지 되는 날 온다.... (0) | 2012.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