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스팩이 휴지 되는 날 온다....

다림영 2012. 4. 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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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4/21


남정욱 교수의 명랑 笑說

 

스펙이 휴지되는 날 온다...왜 남들 늘어선 줄에 서려하는가

 


"선생님은 수구예요.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 밥맛없는 꼰대라고요." "버르장머리 없는 네 얘기를 이렇게 친절하게 들어주고 있는데도?" "쳇, 마음이 드는 건 그거 하나분이에요. 요새는 그것도 가식 아닌지 의심스럽지만요." 얼마 전 제자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따르는 제자가 몇 명 없어 매우 관대하다). 요지인즉, 소생이 기존 질서를 대변하면서 청춘들의 목소리를 불평으로 깎아내리고 노력이 통하지 않는 불평으로 깎아내리고 노력이 통하지 않는 불평등한 세상을 옹호하며 그저 죽어라 노력하라는 안 하느니만 못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속을 보여주니 고마웠다.

 

 

나이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술 몇 잔 들어가더니 씩 웃는다."아까 가식이라고 비난한 건 취솝니다." "자식이라고만 부르지 말아다오."  곰곰이 생각했다. 노력하라고 말한게 잘못인가. 그런데 정말 노력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하기는 한 것일가. 방학동안 행적을 물었더니 영어를 중심으로 소위 '스펙'강화에 매진했단다.

 

제자를 해부대 위에 올렸다. 소생과 두 띠동갑이나 90년 말띠다. 90년 말띠면 출생인구 63만 9208명에 남자는 34만1657명, 여자는 그 나머지 , 지극히 평균적 인간으로 가정했을 때 제자의 영어 성적은 동년배 중 1만등 안팎일 것이다. 얼마나 앞질렀을까. 또래들 역시 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 봐줘야 200명 제쳤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노력이 아니라 '고생'이다. 살아가면서 1만 번째 영어 실력에 영어 관련 업무가 떨어질 확률은 벼락이 3회 연속 머리에 떨어질 확률보다 낮다. 학생들에게 종종 해주는 얘기가 있다. '어느 업종이 되었건 여러분은 항상 상위 3%로와 경쟁하게 된다. 혹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10%밖이라고 생각되면 즉시 퇴각하고 다른 활로를 찾아라."

 

그럼 97%는 죽으라는 말씀? 아니다 . 세상이 못되긴 했어도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다. 일단 그놈의 스펙부터 잊어라. 스펙은 어떤 제품과 결합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관리자들에게 알려주는 '제품사용 설명서'다. 스펙은 일종의 줄 세우기다. 관리자들은 우리들의 소중한 인생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그저 세워놓은 줄 '앞에서' 부터 필요한 만큼 뽑아다 쓰면 그만이다.

 


차라리 '식스팩'을 보여주며 몸이 건강하니 뭐든 하겠다고 들이미는 게 효율적이다. 마트 계산대에서도 긴 줄에는 서지 않는게 상식이다. '일상'에서도 통하는 이 당연한 원책을 왜 '인생'에는 적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토익을 접고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할 수는 없잖아요"하실지 모르겠다. 거참, 1만등이나 30만등이나 받는 대접은 거기서 거기라니까. S출판사 강심호 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애들 영어랑 중국어 안 가르치려고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데는 남미, 아시아 일부 그리고 아프리카 아니겟어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쌓아온 모든 스펙이 휴지가 되는 그런 무서운 날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미안하지만 그런날은 온다. 어쩌면 참 빨리 올지 모른다. 소생이 말한 노력은 남들이 다 하는 노력이 아니다. 노력은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할 때 의미가 있다. 줄을 서지 말고 스스로 줄을 만들어라. 이 대목에서 "유리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불리하지만 확실한 현실에 투자하시겠어요" 하는 분 계실 것이다. 간택되어 '부품'이 되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부품의 비극은 인간대접을 못받는게 아니라 교체 되는 것이다.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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