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되다
'홀림'이 근거를 찾아나선 상태. '반한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
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 만한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게다가 중독된 상태와 비슷해서, 종료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실망의 언저리를 맴돌다가도 어느새
다시 감정은 복원된다. 매혹되어 있어서 자신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거나 매혹으로 인해 포만감을 느껴본
이후라면, 홀연히 매혹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 질수도 있다.
그럴 땐 매혹에의 경험이, 가슴에서 반짝이는 자랑스런 금색 훈장과도 같다.
아끼다
사랑의 명백한 한 형태,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듯, 아끼는 대상을 아낌없이 아끼기 위하여 스스로를 아낌
없이 희생하는 경우가 아낌에 있어서 '최선의 병적'인 상태다. 오래도록 두고두고 음미하기 위하여 발효의
시간을 기다리는 차분한 설렘도 아낌에 속한다. 그렇지만, 언제 어디서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욕망이고 보면, '아낀다'라는 말은 일종의 모독일 수도 있다.
쓰여지지 않고 간직된다는 것은 끌러보지 않은 선물꾸러미 같고, 읽혀지지 않은 책과도 같다.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는 말일 수도 있고, 도무지 효용성을 찾을 길이 없다는 낭패감을 은유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애틋하게 에워싸는 보호막과도 같은 호감.
손쓸 방법이 없고, 손댈 재간이 없는 대상을 향해 에둘러 포복해 가고 있는 구애. 흠모나 동경처럼 '거리'
가 확보되어 있지만, 이경우의 거리는 무수한 주름이 잡힌 채 접혀 있어서, 심적 거리는 실제보다 가깝다.
매력
착하고 순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매력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럴경우 '미덥다'는 표현
을 더 쓰게 된다. 한 존재가 가진 결핍과 과잉, 모자라거나 지나친 성향들. 그것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
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호할 때, 이 낱말은 제법 용이하게 쓰이곤 한다.
누군가의 모자란 점과 지나친 점을 곱게 보아줄 때. 매력은 날개를 펼친다. 매력있는 존재만을 좇는 사람
은 자신이 매력있어 하는 대상과의 고나계에 대해 늘 불만족스럽다. 게을러서 아름다운 사람은 관계에
도 게으르며, 섬세해서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방의 섬세하지 못함을 이따금 책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력 덩어리들은 언제나 상대방을 허하게 하거나 피곤하게 한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긴
있다. 결핍을 결핍으로 똑바로 인식하고, 과잉을 과잉으로 똑바로 인지하는때. 그때란 대개 관계의 내리막
길을 걸어 갈 때다. 한혹, 매력 대문에 생겨난 호감의 양날개를 뚝뚝 분지르며 걸어내려가기도 한다.
보은
닳고 해진 관계에만 자리 잡는 호감이다. 주거니 받거니, 아웅다웅 하면서 살아가다가, 홀연히 깨달음처
럼 다가오는 웅숭깊은 곳. 오래 입은 스웨터의 팔굼치가 해질 때와 같이 . 오래 들고 다닌 가죽 가방의 손
잡이가 꺼슬꺼슬해질 때와 같이 그렇게 보은 은 찾아온다.
호감의 한 표현으로서의 보은은 , 반드시 은혜에 대한 대가로 찾아오진 않는다. 안쓰러움과 미안함과 연민
의 미세한 알갱이들이, 낡은 스웨터의 보풀처럼 매달려 있을 때, 그 낡음에 대하여 무릎이 꿇어지는 지점
이 잇다. 경건함. 그리고 가슴아픔. 그런것들을 거느리고 언제나 뒤늦게 참회의 밥상을 들고 찾아오는 것이다.
신뢰
p129
흠모와 보은 처럼 느리게 찾아온다. 흠모보다는 좀 더 느리며, 보은 보다는 좀 더 빠르다. 또한, 흠모보다는
안정된 상태이지만, 보은보다는 불안정한 상태다. '실망'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마음 상태를 몇 번 거치며
거듭날 수록, 불에 달궈진 연장처럼 단단해진다. 대개의 다른 호감들이 추상적이고 희미한 상태에서
진행되어 초점이 잡히고 구체적이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면.
신뢰는 그것을 역행한다. 구체적인 이유들이 점철된 후에야 비로소 막연하고 추상적인 신뢰를 낳는다. 그 순
서를 밟는 한, 신뢰는 최적의 강도를 갖게 되고 알맞은 온도와 거리를 찾아 뿌리를 내린다.
손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뿐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촉감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
부터 어떤 설움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 부터 지정되곤 한다. 동물원에서 목격하는 가장 평화로운 풍경중
하나는 , 따사로운 양지에 원숭이들이 일렬로 앉아 서로의 털을 손질하며 기생충을 잡아주는 모습이다.
우리의 손길은 그렇게 마음의 기생충을 잡아주며 위무한다. 기생충을 박멸하려는 듯한 연인으 격렬한 애무
는, 깊고 깊은 우울마저 소독해낸다. 그럴 때는 추모객이 끊이지 않는 비석처럼, 감정의 모소리가 반들 반
들 윤이나며, 탁본을 뜨듯 비문이 심장에 새겨진다. 위무의 손길과 애무의 손길을 무심히 가로지르는 듯한
마사지요법도, 주물럭 주물럭 빚어내는 밀가루 반죽과 나무들을 빚는 손맛도 , 뻣뻣해지고 간사해지는 우리
의 육체에 단비를 내리곤 한다.
목소리
어떤 목소리는 물러서게 하고, 어떤 목소리는 다가서게 한다. 어떤 특별한 목소리는 우리의 귀를 포박한다.
또 어떤 특별한 목소리는 우리의 영혼까지 포박한다. 그어떤 훌륭한 악기도 그 특별한 목소리만 못하다.
목소리에는 달콤함과 쓰디씀과 시원함과 저릿함과 애절함과 단호함과 슬픔과 기쁨과 무서움과 비통과 환
희가 담겨 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애착과 교감이 거기엔 있다. 그래서 속기도 쉽고 속이기도 간단하다. 그
래서 목소리는, 그 사람의 참됨을 알아내는 데 있어서는 철천지 원수와 같다.
뒷모습
뒷모습은 절대 가장할 수 업다. 정면은 아름답다는 감탄을 이끌어내지만,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한숨을 이끌
어 낸다. 누군가의 뒷모습은 돌아선 이후를 오래도록 지켜보았을 때에만 각인 되기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아련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 바라보는 뒷모습이기에. 눈거풀 안쪽에다 우리
는 그 형상을 찍어서 넣어둔다.그래서 꺼내지지 않는다.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다.
체취
우리가 지닌 오감중에서 유일하게 채록되지 않는냄새. 채록할 수 는 더더욱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당신의
체취. 채록하자마자 사라지고야 마는 체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채록하려 한 자는 그 체취를 평생
토록 감각할 수 있다. 엄마의 분냄새와 아빠의 스킨 냄새를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해 낼수 잇는 것처럼.
누군가 몸을 빼니고 떠나간 후 빈 베개에 코를 부벼본 자만이 체취의 사무침에갇힌다.
말, 나 자신을 위하여
마음에서 무언가 사라지길 원해서 우리는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 정말 잘 기억하기 위해서 말을
해 두는 걸까.ㅇ ㅏ니면,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말을 건네는 걸까. 무언가 사라지길 원해서 하는
말은 '발산'이고 잘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말은 '언약'이며, 마음을 얻기 위해 하는 말은 '애걸'이다.
발산이라는 것은 억압의 뚜껑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 기체처럼 무언가를 날려 보내는 느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자의식이라는 억압이 우리의 갖은 욕망을 압력밥솥의 뚜껑처럼 꽁꽁 닫아주지만, 그 압력이 봄날
의 겨울 코트처럼 어개를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 들 대가 있다. 그 럴 때에 우리는 코트를 벗어던져야 하
는 때임을 저절로 안다.
미숙한 발산의 기술은 때로 코트 뿐만 아니라 제 살갗마저 벗어던지게 하는데. 그럴 때에는 기체를 휘발
시키는 동시에 마음의 출혈을 경험하고야 만다. 그러니까 발산은 , 방출이냐 출형이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
이 가벼워지게 하거나, 되레 더 무거워지게 한다. 더구나 발산에 대한 기술 부족에서 발생된 나쁜 경험
들 때문에, 발산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은 분노를 방출하려 할 때에 가장 유용하다. 무엇보다 이럴 때는 기술이 필요하다. 방
출이 아니라 분출일 경우에는 그대가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기에. 더더욱 기술이 필요하다. 방출이 정
상적인 출구를 사용하는 내보내기라면, 분출은 예정되지 않은 곳에서 함부로 터져나오는 내보내기다.
우리의 마음과 육체는 일종으 '심술'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지나친 억제를 받으면, 불쾌한 출구를 통해
그것을 발산하고자 하는 괴팍함이 있다. 그런 식의 분출은 밸브가 고장난 순환 파이프 같아서, 화상과도
같은 고통과 지독한 혼란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다.
이것은 거의 '재난'에 가가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준비된 출구를 통해서, 알맞은 압력이 쌓였을 때에 이
뤄지는 내보내기는, 기분전환을 제대로 만끽하게 해주며,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정화'를 결과물로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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