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확/손광성
우리집 마당에는 물을 담아 두는 돌확이 세 개 있다.
하나는 이 집으로 이사올 때 전 주인에게서 헐값에 물려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동에서 쌀 두 가마 값을 주고 사온 것이다. 타원형에 손잡이가 달려있다. 크기는 긴 쪽이 어른 한 발은 좋이 된다.오랜 풍상으로 모난 데가 없고 청태마저 파란 것이 고색이 창연하다.
뜰이 좁아서 연못을 가질 형편이 못 되는 나에게 이 돌확은 연못 구실을 한다. 맑은 샘물을 길어다 붓고 가끔씩 가서 수기水氣를 쐬기도 하고, 아니면 부평초를 띄워 두거나 수련 몇 포기를 심어두고 그 윤기 나는 잎과 청초한 꽃을 즐기기도 한다.
나머지는 내가 손수 파낸 것이다. 크기는 앞의 것들보다 작은 편이지만 펑퍼짐한, 강에서 나는 돌을 옮겨다 정으로 쪼아 낸 것이어서 야취野趣가 그만이다.
그동안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녔지만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닌 것이 있다면, 몇 권 안 되는 내 책과 이민 간 친구가 물려준 늙은 진달래 한 그루와 그리고 이 돌확인가 한다. 장정 둘이 덤벼도 겨우 옮길 수 있는 이 돌덩이를 끌고 다니면서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내가 손수 파낸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내게 베푸는 혜택이 적지 않아서였다고 생각된다.
봄이면 꽃 그림자도 곱게 비춰주고, 여름이면 메마른 뜰에 서늘한 수기도 뿜어준다. 옆에 앉아 있으면 더위도 한 발 물러 서는 듯, 때로는 지나가던 구름도 쉬어서 가고, 목이 마른 이 동네 새들도 와서 목을 죽인다. 둘레에 하얀 새똥이 몇 개 떨어져 있는 것도 밉지 않다.
지금은 제 주인이 찾아가 버렸지만 잠시 길을 잃은 강아지 한 마리가 살다 간 적이 있었는데 ,녀석도 제 밥그릇에 담긴 물보다 이 돌확에 담긴 물을 더 좋아했다.
잠이 오지 않는 날 밤, 뜰을 서성거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돌확에 와서 걸터앉게 된다. 들여다보면 구리거울처럼 잔잔한 물, 그 속에 초롱초롱 별들이 잠겨 있다. 때로는 하현달도 기웃거린다. 흐린 날은 이 돌확 속도 그저 캄캄하기만 하다.
그런 날 밤은 어쩐지 내 마음도 공연히 어두워지는 것 같다.
오래전 일이지만 우리 외가에도 이만한 돌확이 하나 있었다.
작은 샘가였는데 외조부께서 차를 달이거나 글을 쓰기 전에 이 돌확에서 손을 씻곤하셨다. 바닥에 깔려 있는 하얀 조약돌 때문이었을까? 그 속에 담겨 있는 물은 언제나 맑고 투명하기만 했다. 그리고 언제나 세월 모르던 나의 검게 탄 얼굴이 그 물속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돌확 속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들어 있다.
늙어가는 얼굴이다.
두차례의 전쟁, 어머니의 죽음, 형제들과의 이별, 그 모든 것들이 스치고 지나간 이마에는 깊은 고랑이 패이고 탄력을 잃은 피부는 이제 병색이 짙다. 하지만 마른 나의 얼굴에는 욕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헛된 이름을 위해 분칠한 적이 없고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비굴한 웃음을 팔아 본 적이 없다. 그저 카랑카랑 늙어 가는 얼굴이다. 이왕이면 나도 곱게 늙어 가는 얼굴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욕심도 없다.
오늘이 우수.
이제 봄이 멀지 않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돌확에서 얼을 따내야겠다. 그리고 거기에 맑은 샘물을 길어다 부으리라. 겨우내, 목이 말랐을 이 마을 새들이 목을 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