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삶과 죽음의 예지/장자/윤영춘

다림영 2013. 10. 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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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은 한정이 있으나 지식은 한정이 없다. 한정이 있는 것으로써 한정이 없는 것을 따른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명예를 가까이하지는 말아야 하며 악한 일을 하더라도 형벌을 가까이 하지는 말아야 할지니, 오직 중용을 따라야만 몸을 보존하고 삶을 온전히 하고 제 명을 다 살 수 있을 것이다.

 

요리사가 문혜군(文惠君)에게 소를 잡아드렸다. 손을 놀리는 것이나 어깨에 둘러메는 폼이나 발을 내디디는 것이나 무릎을 굽히는 것이나, 칼을 휘두르는 품이 그 어느 하나가 음률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상림(桑林)의 춤에 배합되고 경수(徑首)의 장단에 조화되었다. 문혜군이 이것을 보고

야아, 참 잘한다. 네 기술이 어쩌면 이렇게도 훌륭하냐?” 하니 요리사는 칼을 내려놓고,

소인이 좋아하는 것은 도(道) 이오니 이 도가 기술보다 낫습니다. 소인이 처음 소를 잡기 시작했을 때는 소밖에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눈으로 소를 전혀 본 적이 없었고 영감으로 일을 할 따름입니다. 이목수족의 관능은 멈춰지고 영감만이 작용할 따름입니다.

 

소의 근육에 숨어 있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뼈와 살 사이에 있는 틈바구니를 도려내고 , 뼈마디의 구멍에 칼을 넣어 근육 골절을 조직대로 각을 뜨니 내 기술이 여태까지 칼을 잘못 휘두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골절에 칼을 건드릴 리 있겠습니까?

 

고급 요리사는 한 해에 칼을 한 자루씩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베기 대문이요, 보통 요리사는 한 달에 한 자루씩 바꾸는데 그것은 뼈에 칼을 버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인은 식칼을 19년동안이나 사용했고 소를 여러 천 마리 잡았사오나 칼은 방금 숫돌에 갈아 놓은 것처럼 날카로웠습니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식칼은 얇습니다. 얇은 것으로는 틈바구니에 밀어 넣어도 두껍지 않아서 쉽게 넣을 수 있고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19년이나 되는 칼이지만 방금 숫돌에 갈아 놓은 칼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도려내기 어렵고 단단한 곳을 만날 때는 두려워 조심하나이다. 시선을 멈춰 자세히 보고 식칼을 슬며시 들이대면 흙덩어리가 땅에 떨어지듯 철컥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윽고 식칼을 치켜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휙 돌아보고 흐뭇한 기분으로 서성거리며 식칼을 잘 닦아서 도로 간직해 두는 것입니다.“

문혜군이 이에 답하기를,

좋다! 나는 요리사의 말을 듣고 생명을 기르는 법을 깨달았다고 했다.

 

세계의 명수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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