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자연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다림영 2013. 10. 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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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나기

 

칠흑같이 어두운 어느 날 밤, 우리는 고개에 미처 이르기도 전에 느닷없이 폭풍우를 만났다. 우리는 천막에서 기어 나와 한군데에 움츠리고 모여 앉았다.

소나기는 산등성이를 넘어 우리에게 들이닥쳤다.

온통 어둠뿐이다. 위도 아래도 옆도 없다. 번개가 번뜩이는 찰나에 어둠과 빛이 서로 갈라진다. 그때마다 벨롤라카야와 추구투룰류찻 태산, 그리고 우리 옆에 산같이 높이 솟은 전나무들이 어둠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순간이지만 디딜 땅이 있는가 싶으면 도로 어두움뿐이고 심연뿐이다.

 

천둥소리가 골짜기를 메우고 계곡의 요란한 물소리를 뒤덮는다. 번개는 세바올의 화살처럼 능선을 때리고 그때마다 마치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반드시 거기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을 치고 장관에 휩쓸린 우리는 바다 속의 한 방울 물이 풍랑을 두려워하지않듯 번개와 천둥과 몰아치는 비를 두려워할 것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이 세상의, 오늘 처음으로 우리 눈앞에서 창조된 이 세상의 하찮지만 고마운 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간밤에는 비가 왔었다. 아직도 하늘을 지나는 구름이 때때로 빗방울을 뿌린다.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사과나무뿐만 아니라 둘레의 잔디도 빗물을 담뿍 빨아들였다. 대기에 가득 피어오르는 그 감미로운 훈기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다. 나는 허파가 터지도록 훈기를 들이마신다. 그리고 가슴으로 온통 느껴본다. 나는 숨을 쉰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또 무엇이 있으랴?

 

이것은 감옥이 우리에게서 박탈하는 무엇보다도 비길 데 없는 값진 자유일 것이다...., 이렇게 여기서 숨을 쉰다는 일. 이 세상물기와 싱그러움에 젖은 이 공기보다 더 맛스러울 수는 없으리라. 설령 오층씩 되는 건물의 울안에 갇혀 있는 조그마한 마당일지라도.

 

오토바이의 소음도 축음기의 시끄러운 소리도 확성기의 쉴 새 없는 잡음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비가 오고 난 뒤 사과나무 밑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동안은, 아직 살 수 있는 것이다.

 

 

느릅나무 둥치

 

우리는 통나무를 톱질하던 중 느릅나무 둥치를 하나 자르려고 들었다가 그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지난해 그 나무를 켜서 쓰러뜨린 다음 트랙터로 끌어내어 통으로 있던 것을 토막 내고, 토막을 다시 들것과 트럭에 싣기도 하고 떼로 엮어 물에 띄우고 해서, 여기까지 운반해 온 이래 아무렇게나 땅에 굴려 두었다. 그런데도 이 느릎릅나무는 항복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줄기에서 싱싱하고 푸른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생긴 느릅나무가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바람 소리가 나도록 우거진 가지가 될 싹이었다.

우리는 이 나무토막을 사형대에 걸 듯이 벌써 모탕위에 얹었었다. 그러나 톱으로 그 목을 켤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대로 켜 버린단 말인가? 그렇게도 살려고 하는데, 우리보다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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