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탱고/이주혜
아이와 함께 빗속에 갇혔다. 어제는 잔뜩 성질을 부리던 비가 오늘은 좀 갠다 싶어 하늘 가득한 잿빛 구름을 못 본 척 방심햇던 탓일까. 조급증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가 기어이 비를 만났다. 빗줄기는 금세 주룩주룩 세상을 긋더니 눈앞의 풍경마저 가려버렸다. 아이가 없었다면 아마 그 비를 뚫고서라도 자전거 페달을 내쳐 밟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가엾은 새끼 새처럼 이내 겁을 집어먹고 울상이었다.
부모의 준비된 보호가 통하지 않는 자연의 공격이란 녀석에게 얼마나 막무가내이 공포일까? 자전거를 버려두고 아이만 덥석 안은 채 가장 가까운 처마 밑으로 숨어드는 내 모양도 어김없는 어미 새다.
처마 밑에 그녀를 또 본다. 그녀는 빗속에서 한참 재미나게 속도를 즐기고 있다. 아파트와 과수원을 경계 짓는 아스팔트 경사도로 맨 위에 그녀가 멈춰 섰다. 밤늦게 대형트럭들의 주차장 노릇을 해주는 이 도로는 낮에는 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그녀에겐 천혜의 자전거 연습지다.
경사로 끝에 잠시 멈춰선 그녀는 자전거핸들을 꼭 잡고 약 삼 초간 숨을 고른다. 오케스트라 단원들 앞에서 포화상태의 침묵을 깨뜨리기 직전, 지휘자의 표정이 저럴까. 그녀는 눈앞을 노려보듯 주시하고 나서 맘속으로 하나 둘 셋 구령을 붙인후 여지없이 자전거를 출발시킨다.
팽팽한 도로가 바퀴를 밀어낸다. 내리막길에서 탄력을 받은 자전거는 순식간에 미끄러지며 날아오를 듯 속력을 얻는다. 그녀의 부스스한 파마머리와 모란곷이 화련한 몸빼 바지도 함께 펄럭인다. 애초에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불분명한 18인치 바퀴의 아동용 자전거가 작달막한 초로의 촌부를 태우고 아파트와 과수원 사이의 샛길을 질주하는 모양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압권은 자전거가 내려갈 때 그녀의 얼굴에 돋아나는 득의양양한 표정이다. 놀이공원광고판에 클로즈업된 모델들의 표정이 저보다 신날까. 그녀는 내리막길 끝에서 마지막 절정의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여지없이 자전거는 커브를 도는 데 뒹군다. 안정적인 착지는 아직 그녀가 정복하지 못한 처녀지다. 그녀는 넘어지지 않고 착지하는 그날가지 이 아슬아슬한 질주를 멈추지 않을 작정인가보다.
세리모니의 마지막을 열적은 미소로 마무리하며 그녀는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되오른다. 그녀는 무슨일로 그 나이에, 고된 품팔이의 짬짬에 새로이 자전거를 배우고 있는걸까. 그녀의 벗들임을 분명한 서너 명의 아낙들이 길가에 퍼질러 앉아 호미의 흙을 털거나 몸배를 고쳐 입거나 길게 누워 낮잠을 청하는 그 달콤한 찜에, 그녀 홀로 이 야단법석, 고행을 자처하고 있는지, 그녀에게 마실이라도 가 주전부리라도 내밀며 말을 터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 기묘한모양새를 나는 잊지 못한다. 초로의 노파, 촌부임이 분명한, 유니폼과도 같은 체크무늬 셔츠에 몸빼 바지, 흙투성이 수건을 몸에 걸치고 차양 너른 모자를 썼지만 오랫동안 햇볕아래 노동했음을 증명하는 검은 얼굴과 주름 작달막한 키, 굽은 허리, 누가 봐도 근처 과수원이나 밭에서 품을 팔고왔음이 분명한 행색이었는데, 엉뚱하게도 그녀는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만화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아동용 자전거로 말이다.
손주녀석이 쓰다 버린 자전거일가. 일주일만 지나도 산더미같이 쌓인다는 아파트 사람들이 버린 물건일가. 일주일만 지나도 산더미같이 쌓인다는 아파트 사람들이 버린 물건일가. 그녀는 부조화의 풍경을 조롱하듯 홀로 연습에 열중이었다.
자전거는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단 일 분도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겁이 없는 대신 균형 잡는 일 자체가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에도 그녀는 쉬지 않고 자전거를 굴렸다.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길에서 흔히 그녀를 보았다. 시간이 흘러도 자전거 실력은 늘어보이지 않았다. 이미 늙어 고된 몸은 새로이 근육을 적응시키는 일에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응원군도 코치도 없는 연습은 무모하리만큼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냈다. 경사로 위에서 출발해 그대로 내려오기, 고속상태에서 자전거의 중심잡기가 훨신 쉽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 챈 모양이다. 경사로 끝에 도착해 속도가 줄면 여지없이 넘어져버리는 실력이지만 일단 출발하면 얼마간은 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짜릿한 비상을 맘껏 즐기기로 한 모양이다.
오늘 빗속의 질주는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비에 젖어 번득이는 아스팔트위에 빗방울이 날렵하게 튀어 오른다. 검은 도로 위로 스멀스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나숨잎이 떤다. 비 맞은 자갈이 와글와글 노래를 부른다. 이 소란 속에 팽팽하게 긴장한 두 개의 바퀴가 반항하듯 젖은 도로를 밀어내며 구른다. 거침없이 출발한 자전거는 속도를 얻어 주체할 수 없는 활달함으로 경사로를 내려온다.
자전거는 이내 하늘로 튀어 오를 것만 같다.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내 가슴이 터질듯하다. 그녀의 입이 벌어진다. 그녀가 웃는다. 순간 페달에서 그녀의 발이 덜어진다. 발을 옆으로 쭉 뻗은 그녀는 열두살 계집아이가 된다. 바람맞은 나뭇잎이 일제히 환호한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핸들을 약간 옆으로 비틀더니 완만하게 속도를 줄이고 착지에 성공한다. 의기양양한 그녀의 어깨가 쭉 퍼진다. 나는 맘 속으로 커다랗게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열정에 진정한 찬사를 보낸다.
어떤 벗이 내게 속삭였다. 다 늙어 가족으로부터 홀가분해지면 함께 아르헨티나로 떠나자고, 그곳엔 하루 종일 탱고를 배우고 출 수 있는 하숙집이 있다고, 먹고자고 마시며 종일토록 함께 탱고를 추자고, 열정의 탱고 춤사위를 떠올리며 나는 몸을 떨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스스로 선사하는 상으로 과연 손색이 없지 않은가.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스스로를 위무하는 상, 그녀도 지금 스스로 상을 주고 있는 걸까. 이국의 탱고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황혼의 한나절을 자전거 위에서 내달리고 싶었던 걸까. 자전거는 황혼의 그녀가 온몸으로 지피고 있는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추는 일, 몽골의 초원에 누워 솓아질 듯한 별을 이불삼아 덮고 허공으로 길게 입김을 불어넣는 일, 파리의 노천카페에 앉아 머리가 깨질듯하게 걸쭉한 그곳의 커피를 들이키며 이방인의 옆모습을 훔쳐보는 일, 삿뽀로의 눈 더미 속에 파묻혀 종일토록 눈싸움을 하다가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뜨거운 우동국물을 홀짝이는일, 우기의 밀림을 통과하며 구렁이를 보고 꺅꺅 비명을 지르는일,
종로의 한 주점에서 뜨겁게 데운 청주를 마시며 여행담을 주절거리는 일, 극장에서 밤새도록 연달아 영화를 보다가 새벽에 그대로 곯아 떨어지는 일, 죽기전에 꼭 한번 당신과 해보고 싶은 일들,내가 감히 ‘열정’이라는 이름 붙인 일들, 그녀 덕분에 나는 열정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성공하길 스스로 기원할, 삶의 에너지가 되어줄, 굼꾸기만 해도 입이 벙긋거려지는, 내 생활의 이정표들,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하는 깜짝 놀랄 선물들, 그녀가 자전거 탱고로 내게 가르쳐준 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