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분노의 눈물/조지기싱

다림영 2013. 9. 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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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물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식물채집에 기쁨을 느껴왔다. 내가 모르고 있던 풀을 발견하고, 책의 도움을 얻어 그 이름을 확인하고, 다음 길가에서 그 풀이 눈에 뛸 때에는 그 이름을 불러 반길 수 있는 것이 내겐 즐거운 것이다. 그 풀이 흔하지 않은 풀이라면 그것을 발견한 것이 또한 기쁨이다. 자연이라는 대예술가는 평범한 꽃들을 누구의 눈에나 뛸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가장 천한 잡초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그 경이와 아름다움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시선이 닿는 데에서 만들어진다. 희귀한 꽃은 그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 조물주의 보다 섬세한 기분으로 창조된다. 이러한 꽃을 발견하면 더욱 신성한 경지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은 것 같은 느낌을 우리는 맛보게 된다.

 

오늘 나는 꽤 먼길을 산보햇다. 그 길 끝닿는 데서 조그만 흰 꽃이 피어있는 선갈퀴를 발견했다. 그것은 어린 물푸레나무 덤불 속에 자라고 있었다. 그 꽃을 한참 바라다보고 있을 때, 나는 그 꽃을 둘러싼 날씬한 물푸레나무의 우아한 기품이 마음에 들었고, 그 꽃의 매끈한 광채와 그 올리브 빛깔에 기쁨을 느꼈다. 바로 옆에는 느릎나무의 숲이 있었다. 피진()처럼 울퉁불퉁한 그 거죽에는 마치 기이한 외국문자라도 적어 넣은 듯이 줄이 그어져 있어서, 어린 물푸레나무들을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

 

 

언제까지 산책을 하고 있어도 나는 상관이 없다. 돌아가서 해야 할 일도 없거니와, 아무리 늦게까지 소요한다고 해도 곤란하거나 불안해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봄은 이 시골길들과 목장 위에 찬란히 빛나고 있다. 내가 가는 길에서 새로 갈라지는 꼬불꼬불한 샛길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봄은 나에게 잊은 지 오래인 젊음의 기움을 어느 정도 일깨우 준다.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걸으면서 어린아이처럼 혼자서 노래를 불러본다. 그 노래는 내가 어릴 적에 배운 노래다.

 

여기에서 내게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어느 마을 가까이, 숲가 호젓한 곳에서 나는 열 살쯤 되는 소년 하나를 만났었다. 소년은 두 팔로 가리운 머리를 나무에 기대고 서서 몹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물어 보았다. 그리고 조금 애써서 캐물은 결고- 그는 아무것도 아닌 시골뜨기보다는 나았다.- 그가 빚 갚을 돈 6펜스를 가지고 심부름 나왔다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가엾은 소년의 마음은 그러한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어른이었다면 절망의 고민이라고 할 만한 상태에 있었다. 꽤 오랫동안 울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얼굴의 근육은 온통 고문이나 당한 것처럼 실룩거렸고, 손발마저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이며 목소리는 가장 악한 죄인만이 받아야 할 그런 비참한 고통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6펜스를 잃어버린 까닭이었다.

 

나도 그 소년을 따라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것은 이 광경이 의미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과 분노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화창한 봄날, 하늘도 땅도 인간의 영혼에 축복을 내려주는 그러한 때에 , 제대로라면 어린 시절만이 맛볼 수 있는 그런 기쁨을 즐기고 있었을 아이가, 다만 6펜스의 돈을 손에서 떨어뜨렸다는 까닭으로 하여 가슴이 터질 듯 울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손실은 무척 중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소년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부모를 만나는 것이 두렵다기보다는 자기가 부모에게 끼친 손해를 생각하니 그만 슬픔이 복받쳤던 것이다. 6펜스의 돈을 길가에서 잃었다고 해서 온 가족이 비탄에 빠져야 하다니,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 소위 문명의 상태는 그것을 어떠한 말로 설명해야 적당할지.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6펜스 가치의 기적을 만들어 주었다.

 

30분 걸려 나는 겨우 평온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분격하는 것은 인간이 조금이라도 현명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부질없는 짓이다. 내게 있어서 6펜스의 기적은 중대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전연 그만한 돈을 낼 수가 없거나, 혹 무리해서 낸다면 그 때문에 한 끼의 식사가 달아나 버리던 시절이 있던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기과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책 세계의 명수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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